AI가 하버드 강의도 대신한다면, 대학은 왜 필요한가?
[AI 대학혁명] 학벌의 시대는 끝났는가?
대학 입학 직후 챗GPT를 만난 첫 졸업 세대에게 하버드 총장이 던진 질문
“노력은 여전히 중요하다”…AI에 맡길 일과 직접 배울 일을 구분하라
AI 시대 대학의 존재 이유는 ‘필요한 어려움’과 ‘예상하지 못한 만남’
2026년 미국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은 대학 입학 직후 챗GPT를 만난 첫 졸업 세대다. 이들이 입학한 2022년 가을에서 불과 몇 달 뒤인 11월 30일, 오픈AI가 챗GPT를 공개했다. 이들은 과제와 시험, 연구와 코딩, 인턴 지원과 취업 준비까지 생성 AI가 예외적인 도구에서 일상적인 학습 도구로 바뀌는 과정을 캠퍼스 안에서 경험했다.
과제와 시험, 연구와 코딩, 인턴 지원과 취업 준비에 이르기까지 대학생활 전체를 생성 AI의 확산과 함께 했다. AI가 대학 교육의 예외적인 도구에서 일상적인 학습 도구로 바뀌는 과정을 캠퍼스 안에서 직접 경험한 첫 세대다.
또 졸업 시즌에 갑자기 불어닥친 취업 한파와 인턴십도 구하기 쉽지 않은 상황 졸업을 하게 됐다. 그래서 센트럴플로리다대와 애리조나대 등에서는 AI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졸업식 연사가 학생들의 야유를 받아 화제가 됐다. AI가 캠퍼스 깊숙이 들어온 만큼, 기술이 자신의 배움과 일자리에 미칠 영향에 대한 학생들의 불안과 반감도 커졌다는 신호였다.
심지어 대학은 '학위' 그리고 '학벌(특정 학교 출신이라는 배경을 중심으로 형성된 인맥·집단과 그 영향력)'의 의미가 갈수록 퇴색되고 재정의되고 있는 시기에 놓여 있다.
'학위' '학벌'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하버드대는 어떻게 이 상황을 이해하고, 돌파하려 하고 있을까?
더밀크는 지난 8월 13일 개최한 '학벌의 시대는 끝났는가?' 웨비나에 이어 앨런 가버 하버드대 총장이 5월 26일 바칼로레아 예배와 6월 5일 동문의 날 행사에서 전한 두 연설을 통해 AI 시대 대학의 존재 이유를 되짚어본다.
하버드대 총장이 AI 시대 졸업한 학생들에게
지난 2026년 5월 26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의 하버드 야드. 하버드대 졸업생들이 학위복을 입고 터센테너리 시어터에 모였다. 1642년부터 이어진 바칼로레아 예배(Baccalaureate Service)는 졸업을 앞둔 학부생들에게 대학 총장이 마지막 메시지를 전하는 하버드의 전통 행사다.
이날 연설을 들은 2026년 졸업생들이 대학에 입학한 것은 2022년 가을이었다. 불과 몇 달 뒤인 그해 11월 챗GPT가 공개됐다.
연단에 오른 앨런 가버 하버드대 총장은 AI가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없앨지, 어떤 전공이 유망해질지를 예측하지 않았다. AI를 금지해야 하는지 허용해야 하는지를 놓고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신 기술이 답을 대신 만들어주는 시대에 교육이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 물었다.
AI가 몇 초 만에 정상의 풍경을 보여준다면 인간은 왜 힘들게 산을 올라야 하는가? AI가 지식을 설명하고 과제까지 완성할 수 있다면 학생은 무엇을 직접 배워야 하는가? 그리고 지식 전달이라는 전통적인 역할이 흔들린 대학은 왜 여전히 필요한가?
그리고 가버 총장이 졸업생들에게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
“노력은 여전히 중요하다”
“우리는 열기구의 시대에 살고 있다”
가버 총장은 1903년 프랑스 알프스에 등장한 관광용 열기구 이야기로 연설을 시작했다.
당시 줄에 매인 열기구는 관광객을 불과 10분 만에 알프스 산맥을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이로 올려 보냈다. 한 미국 신문 비평가는 사람들이 위험과 추위를 견디며 몽블랑을 오르지 않고도 산악인과 같은 풍경을 보게 됐다며 개탄했다.
엘리베이터와 철도, 전신, 열기구로 대표되는 ‘단순화의 열풍’이 새로운 세기를 노력하지 않는 시대로 만들 것이라는 우려였다.
가버 총장은 “우리는 지금 열기구의 시대에 살고 있다. 10분이 아니라 몇 초 만에 새로운 시야를 얻고, 힘든 등반 대신 비행의 편리함을 택한다.”며 120여 년 전의 열기구를 오늘날의 AI에 비유했다. 몇 달 동안 공부해야 얻을 수 있었던 지식을 몇 초 만에 받아보고, 보고서와 코드, 이미지도 곧바로 만든다. 직접 산을 오르는 수고를 건너뛰고 정상의 풍경부터 보는 셈이다.
가버 총장이 모든 산을 다시 걸어서 올라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다. 계산기가 계산자를, GPS가 종이지도를 밀어낸 것처럼 기술의 진보가 일어나면 기존 기술은 가치를 읽고 그 기술이 바탕인 직업은 사라진다.
가버 총장은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탐색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광대한 영역이 있다”고 말했다.
AI를 거부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모든 것을 AI에 맡기자는 뜻도 아니다. 사람을 성장시키는 어려움과 기계에 넘겨도 되는 수고를 구분하라는 주문이다.
그는 “어떤 산이 여전히 직접 오를 가치가 있는지는 여러분이 결정해야 한다”며 졸업생들이 스스로 결정권을 찾고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을 오르는 노력은 정상에 도착하기 위해 치르는 비용만이 아니다. 길을 잃고 실패한 방법을 고치는 동안 자신이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발견한다. 어려운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면서 지식은 단순히 얻은 답이 아니라 스스로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
AI가 과제와 보고서를 대신 만들면 학생은 결과물을 더 빨리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를 만드는 과정에서 얻어야 할 이해와 판단까지 건너뛸 수 있다. 정상의 풍경만 본 사람과 직접 산을 오른 사람에게 '산정상'은 다른 의미일 수밖에 없다.
AI 시대 교육의 역할도 여기에 있다. 학생에게 답을 대신 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산은 왜 직접 올라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가버 총장은 “여러분이 무엇을 알고 싶은지, 버튼 하나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약속과 바꾸지 않을 지식이 무엇인지는 여러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은 ‘필요한 어려움’을 설계해야 한다
이 기준은 대학의 역할도 바꾼다.
과거 대학은 지식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학생은 강의실에서 교수에게 지식을 전달받았다. 이제 강의는 온라인에 공개돼 있고, AI 튜터는 학생의 수준과 질문에 맞춰 설명한다. 지식을 전달하는 일만 놓고 보면 AI가 대학보다 빠르고 저렴할 수 있다.
대학은 답을 공급하는 곳이 아니라 학생이 반드시 직접 씨름해야 할 문제를 설계하는 곳이 돼야 한다.
학생이 자신의 판단을 설명하게 하고, AI가 만든 답의 오류를 찾아내게 해야 한다. 제출된 결과뿐 아니라 그 결과에 도달한 과정을 확인해야 한다. 시험과 구술평가, 토론과 프로젝트의 의미도 달라진다. AI를 막기 위한 감시 도구가 아니라 학생이 실제로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장치가 된다.
가버 총장은 AI와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편안한 큐레이션’도 경계했다. 사용자가 좋아할 만한 정보만 추천받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생각과 사람을 만날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대학의 가치는 바로 이 낯선 만남에 있다. 전공이 다른 학생과 프로젝트를 하고, 자신의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과 토론한다. 당장 쓸모가 없어 보이는 수업을 듣고, 알고리즘이라면 추천하지 않았을 사람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하버드가 내놓은 두 개의 답
가버 총장은 며칠 뒤 열린 동문 행사에서 대학의 존재 이유에 대한 나머지 절반의 답을 내놓았다.
그는 먼저 동문들에게 “무엇이 우리를 이곳으로 이끕니까? 무엇이 해마다 우리를 이곳에 머물게 합니까?” 며 물었다.
가버 총장은 고등학생 시절 하버드대를 “찬란하지만 멀고, 위압적이며, 도달하기 어려운 이상같은 곳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처음 하버드 야드를 걸으며 생각이 달라졌다고 했다. 가버 총장은 “이 대학의 진정한 모습을 보기 시작했다. 재능과 관심, 야망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어렵고 진지한 연구를 수행하는 곳이었다”고 말했다.
하버드의 실체는 건물이나 졸업장, 학교 이름이 아니라는 뜻이다. 지식의 경계에서 어려운 문제를 붙잡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려는 사람들의 집합이 대학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를 ‘공동체’라는 말로 압축했다. 그는 “공동체는 우리를 이곳으로 이끌고 서로 가까이 묶어준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더 큰 선을 세상에서 행할 수 있게 한다”고 강조했다.
두 연설은 하나로 이어진다. 바칼로레아 연설이 어떤 산을 직접 오를 것인가, 즉 개인의 노력을 말했다면, 동문 행사 연설은 그 산을 누구와 함께 오를 것인가, 즉 공동체를 말했다.
AI는 하버드 강의를 요약하고 학생보다 빠르게 코드를 짤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문제를 붙잡을지 결정해주지는 않는다. 교실과 연구실, 동아리에서 만난 사람들 사이에 오랜 시간 쌓이는 신뢰와 협력도 쉽게 복제할 수 없다.
AI 시대 대학의 가치는 더 이상 지식을 독점하는 데 있지 않다. 직접 얻어야 할 이해와 혼자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을 제공하는 데 있다.
물론 등록금이 비싼 명문 사립대의 자기변호이기도 하다. 모든 학생이 같은 장비와 안내자를 갖고 산을 오르는 것은 아니며, 명문대의 공동체와 네트워크도 소수에게 집중돼 있다.
대학은 학생에게 어떤 노력을 요구할 것인지만이 아니라, 누가 그 노력과 공동체에 참여할 기회를 얻는가에도 답해야 한다.
AI 시대, 대학 졸업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AI가 대학을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모든 대학에 묻고 있다.
지금 대학은 학생에게 졸업장 말고 무엇을 주는가?
가버 총장이 두 차례의 연설에서 내놓은 답은 ‘노력’과 ‘공동체’였다. 대학은 지식을 얼마나 많이 전달하는지가 아니라 학생이 반드시 직접 씨름해야 할 문제를 얼마나 잘 설계하는지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버 총장은 “공동체는 우리를 이곳으로 이끌고 서로 가까이 묶어준다”고 말했다. 대학은 알고리즘이 추천하지 않은 사람과 관점을 만나는 곳이어야 한다. 전공과 배경이 다른 사람과 부딪치고 협력하며, 혼자서는 풀 수 없는 문제에 함께 도전하도록 해야 한다.
AI는 정상의 풍경을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산을 직접 올라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 산을 함께 오를 사람도 대신 만나주지 않는다.
AI 시대 대학의 존재 이유는 모든 학생에게 같은 답을 가르치는 데 있지 않다. 자신이 직접 오를 산을 발견하게 하고, 그 산을 함께 오를 사람을 만나게 하는 데 있다.
[스페셜 리포트] 학벌이 재해석된다면 무엇이 경쟁력이 될까?
"AI 혁신을 측정하는 가장 정직한 지표는, 그 기술이 사람의 배움과 일을 어떻게 바꾸는가입니다."
AI를 둘러싼 논쟁이 기술적 단계를 지나, 이제 노동시장과 교육 생태계를 직접 뒤흔들고 있습니다. 미국 퍼듀대의 'AI 역량' 졸업 필수화, 컴퓨터공학 등록률 8.1% 하락과 로보틱스의 폭증. 이는 단순한 교육 뉴스가 아닙니다. 향후 기업의 채용 문이 어디서 닫히고 열릴지 보여주는 선행지표입니다.
더밀크의 스페셜 리포트는 교육의 변화를 통해 '산업과 커리어의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리포트 핵심 포인트
CHAPTER 1. 균열 : '대리급' 소멸이 불러온 노동시장의 충격과 대학 시스템의 변화
CHAPTER 2. 적응 : 70년 에세이 신뢰의 종말, '과정 검증'으로 재조정되는 룰
CHAPTER 3. 재편 : 무너진 '컴공 불패' 신화, AI 시대에 살아남을 3대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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