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페토에서 일주일 살아보니...디지털 라이프, 영속할 수 있을까?

'Z세대 미의 기준이 반영된 캐릭터'

시작은 캐릭터 만들기다. 제페토는 실제 얼굴을 촬영해 나와 닮은 캐릭터를 만드는 세미 리얼리스틱 아바타(Semi-realistic avatar) 기술을 사용했다. 실물을 인공지능을 통해 실시간 렌더링하고 표정과 입의 모양을 자동 생성한다. 맨 얼굴에 안경을 쓰고 촬영을 하니 맘에 들지 않는 결과물이 나왔다. 결국 샘플 아바타 중 나와 가장 닮았다고 생각한 캐릭터를 선택하고, 현실 속 나를 반영해 꾸몄다. 사실 비슷한 거라곤 안경과 올림 머리 뿐이다.

제페토 세상 속 사람들은 다들 한결 같이 백지장처럼 희고 작은 얼굴에 소위 '퇴폐미' 넘치는 화장을 하고 있었다. 타투와 피어싱, 홍대에서 볼법한 패션들. '스우파(예능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영향인지 힙한 댄서 스타일링도 많이 보였다. 몸 사이즈도 다양하게 조절할 수 있는데 대부분이 9등신였다. Z세대가 생각하는 미의 기준을 엿볼 수 있었다. 나도 나름 예쁘고 이상적인 부캐를 만들었다고 생각했지만, 5등신에 안경을 쓴 난 그들과는 다른 종(種) 같았다.

'점프만 하고 나왔다. 그게 끝인 줄 알았는데...'

처음에 적응할 수가 없었다. 캐릭터를 움직이는 것부터 어려웠다. 사람들은 점프를 하고 다니고, 채팅창은 빠르게 올라갔다. 왜 뛰는지, 무슨 대화를 하는 건지 감을 잡을 수 없으니 끼어들 틈도 없었다. '친구 만들기' 방에 들어가서도 혼자 헤매다 결국 나왔다. 가상 현실에서도 소외감을 느끼는 건 한순간이었다.

그러다 어느 자정 쯤 '노래방, 마이크 키고 노래 부르세요' 방에 들어갔다. 캠핑장을 배경으로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고 밤 하늘이 별빛과 오로라로 가득 찬 이 곳은 꽤 낭만적이었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다 순서가 되면 마이크를 키고 노래를 불렀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대부분이 10대 친구들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아이브의 일레븐, 아이유 노래를 부르며 누군가는 춤을 추고 기타를 치며 놀았다. 노래의 힘이었을까? 진짜 캠핑장에 와서 사람들과 두루두루 모여 앉아 즐거운 밤을 보내는 것만 같았다. 풀밭에 드러눕자, 누군가 내 옆에 와서 함께 누웠다. 아무말 없이 우린 그렇게 친구가 됐다. 대화를 하지 않아도, 내 옆에서 같은 동작을 취하는 것만으로도 알 수 없는 유대감을 느꼈다. 서로를 팔로우하며 함께 사진을 찍었다. 노래는 새벽 3시까지 계속 됐고 난 모르는 이의 흥얼거림에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그렇게 제페토를 천천히 알아가기 시작했다.

캠핑의 맛을 보고나니 용기가 생겼다. 새로운 세상을 경험해보고 싶어졌다. 명품 브랜드 구찌(Gucci) 의류와 가방을 제페토에서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직접 구찌 매장으로 가봤다. 매장 앞에 있는 미로찾기 게임을 했다. 덤불 속을 헤쳐서 선물 상자를 열었다. 분수대를 작동시킬 수 있는 열쇠 같은 거였다. 예전에 미로찾기에 성공한 사람들은 한정판 가방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받았다던데, 이벤트는 이미 종료됐다. 매장에 들어가서 옷과 가방을 마음껏 구경하고 나왔다.

그 다음, 의류 브랜드 랄프 로렌(Ralph Lauren)에 갔다. 센트럴 파크와 랄프스 커피숍이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매장에 갔더니 마네킹에 걸려있는 옷들을 풀 착장으로 직접 착용해 볼 수 있었다. 아이템들은 제페토 내 유료 재화, 젬으로 결제한다. 향수 코너에 갔더니 밀키가 시향을 한다. 후각까지 가상현실과 연결되는 세상이 머지않아 올 것 같다.

지정 스팟에 가서 사진 찍기, 옷 정리 돕기 등 퀘스트를 풀면 상품으로 스케이트 보드를 준다. 옷 판매에서 나아가 사용자가 참여할 수 있는 재미 요소들을 넣었다.

파트리스 루베(Patrice Louvet) 랄프 로렌 CEO는 언론 인터뷰에서 "차세대 소비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가상 세계와의 연결이 중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아바타를 활용한 커뮤니케이션이 익숙한 Z세대들에게 친숙하고 호감가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선 제페토 브랜드 입점은 효과적인 마케팅이라 볼 수 있다.

클래식하고 정제된 랄프 로렌의 이미지가 제페토를 통해 보다 영하고 힙하게 리브랜딩 됐다. 이런 식으로 브랜드 이미지 전환이나 신제품 홍보로 제페토 입점은 유용해 보인다.

아이웨어 전문점 젠틀몬스터에 들렸다. 상당히 허름해보이는 1층과 2층을 지나고, 선글라스가 배치돼있는 3층에 도착했다. 위치를 찾기가 어려워 하마터면 안경 한번 써보지 못한채 그냥 나올뻔 했다. 젠틀몬스터 광고가 큰 화면을 통해 나왔다. 미래지향적인 스타일의 선글라스를 착용하며 포즈를 취해봤다. 딱히 특별할 건 없었지만, 실제 평상시에 써보고 싶었던 안경 브랜드를 직접 써보며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삼성 갤럭시 하우스는 블록들이 공중에 설치돼 있어 점프 연습 게임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핸드폰을 팔진 않았고 전광판에 갤럭시 Z 플립3 광고를 했다. 이처럼 브랜드들은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를 녹인 공간을 만들고, 사람들이 오래 머물 수 있도록 재밌는 놀이 기능을 추가했다.

갤럭시 하우스와 유사한 곳으로 우주가 추천 장소에 떴다. 별과 은하수가 가득한 하늘을 유영하는 재미를 만끽했다. 몇 번의 클릭으로 우주까지 날아갈 수 있는 제페토 세상이 참 신기했다. 원하는 다양한 세상을 구축하고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우주 비행의 꿈을 내 부캐가 먼저 이뤄줬다.

어두침침한 곳에 있었더니 밝은 자연의 에너지를 느끼고 싶어졌다. 평화로운 언덕에 와 대자연을 침대 삼아 누워봤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풀과 꽃, 드넓은 언덕, 차분한 배경음악... 이곳에 자주 찾아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상현실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면서 휴식을 취했다.

이어서 노을이 보이는 바다에 갔다. 끝없는 수평선을 따라 수영을 했다. 바다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 계속 헤엄쳐 봤지만, 이 세상은 생각보다 컸다.

남산 타워가 보이는 한강에 갔다.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함께 셀카를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아직 친구를 사귀는 게 익숙치는 않지만, 먼저 다가가서 인사하고 함께 점프를 할 용기는 생겼다. 배가 출출해서 편의점 CU에 가 삼각김밥을 사먹었다. 그리고 한강에 연결된 홍대입구역 지하철도 타봤다. 한강과 편의점 그리고 지하철까지 우리가 실생활에서 자주 경험하는 것들이 꽤나 정교하게 그려져 있어서 놀랐다. 익숙한 장소, 음식, 그리고 문화를 가상 공간에 똑같이 복사해놓은 이유는 두 가지인 것 같다. 첫번째, 익숙한 것을 매개체로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가상 공간을 친숙하게 만들기 위해서. 두번째, 우리가 놓치고 있는 소소한 일상에 대한 그리움을 채워주기 위해서란 생각이 들었다.

스파이더맨3가 보고싶어 CGV 영화관에 갔다. 무려 아이맥스 상영관이다. 하지만 영화는 상영하지 않았고 대신 K-Pop 아이돌 뮤직비디오가 틀어져 있었다. K-Pop 아티스트들과의 콜라보 등 한류 영향이 제페토 인기 상승에 큰 역할을 한 만큼 곳곳에서 K-Pop이 흘러 나왔다. 영화관 의자는 소리에 따라 진동을 했다. 밀키는 신이 났는지 어깨를 막 들썩거렸다.

제페토의 숨겨진 묘미는 상황극이다. '조선시대 상황극', '수업시간 상황극', '막장 가족 상황극' 등등 자신의 부캐에 또 다른 생명을 불어넣는다. 들어가본 조선시대 상황극에선 캐릭터들이 한복을 차려입고 서로가 맡을 역할을 닉네임으로 지명했다. 대본은 없다. 실시간으로 함께 이야기를 만든다.

학교는 코로나19로 인해 집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인기있는 가상공간이다. 들어갈 때마다 항상 유저들이 많이 모여있다. 누군가는 선생님, 공부하는 모범생, 교탁 위를 뛰어다니는 말썽꾸러기. 가지각색이다.

예전의 우리가 '엄마 아빠 놀이'를 하며 놀이터에서 풀잎을 빻고, 모래로 요리를 했던 것처럼 이제 Z세대들은 원하는 가상공간에서 부캐로 실감나는 놀이를 한다.

일주일동안 체험한 제페토 세상은 메타버스라는 거대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제페토에서 부캐를 만들어 일주일간 살아보니 메타버스는 디지털 공간의 중요도가 현실세계와 동급이거나 그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분리 되었던 디지털 공간과 현실 세계가 융합돼 콘텐츠가 실시간 양방향으로 유통될 수 있도록 진화됐다. 가상공간의 경험이 현실 세계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소통, 모임, 쇼핑, 게임의 플랫폼을 갖추고 있는 소셜형 메타버스의 확장성은 무궁무진하다. 제페토는 메타버스의 핵심 요소인 '몰입감 있는 경험'이 가능하고, '크리에이터 경제'가 활성화 돼있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와 비슷하게 퀄리티 높은 가상공간을 구현한 제페토가 몰입감 있는 경험을 선사할 수 있는 것에 놀랐다. 다양한 유저들과 자유로운 실시간 소통이 가능하며 게임, 스타일링, 새로운 세상 모색, 상황극, 노래방 등 함께 다양한 놀이를 할 수 있었다. 또한 현실의 한계를 뛰어 넘어 새로운 자아로 아이덴티티를 확장할 수 있다. 부캐를 통해 새로운 나를 찾으며 실험적인 도전들을 할 수 있다.

특히 제페토는 유저가 직접 콘텐츠를 생산하고 판매할 수 있는 크리에이터 경제가 활성화 돼있다. 아이템이나 가상 공간을 직접 제작함으로써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고, 수익을 만든다. 제페토 아바타 인플루언서들은 실시간 라이브 방송도 한다. 이는 대규모 투자 유치로 이어졌다.

실제 2021년 11월 소프트뱅크는 약 2220억원을 제페토에 투자했다. 제페토의 가치는 약 1조1500억원으로 평가받았고, 이는 2020년 5월 대비 7배 이상 상승한 금액이다. 투자금은 방송, 애니메이션, 콘서트 및 노래방 등의 컨텐츠 다변화 및 확장에 쓰일 예정이다.

하지만 제페토에 온전히 몰입하고 관심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긴 어려웠다. 반복적인 점프 게임의 지루함, 인위적이고 피상적인 소통, 키 조작의 어려움 등 여러 문제점이 있다. 또한 메타버스의 부작용에 대해서도 필히 생각해봐야 한다. 메타버스 윤리의 가장 큰 문제는 정신적 프라이버시에 대한 침범으로 사람을 고립시키고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 수 있다.

로블록스와 함께 대표적 메타버스 서비스 중 하나로 꼽히는 '제페토'가 디지털 기술을 통해 새로운 재미를 찾고,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며,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신선한 재미와 잔잔한 위로를 주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제페토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알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며,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현실 속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디지털 세계에 몰입할수록 현실의 중요함을 깨닫게 해줬다.

사실 이 같은 서비스는 처음이 아니다. 약 20년 전인 지난 2003년 처음 공개돼 글로벌 화제를 불러 일으킨 린든 랩의 '세컨드라이프(Secondlife)'가 있었다. 세컨드라이프는 가상의 공간에서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이용자, 즉 런던과 뉴욕에 떨어져 있는 이용자들끼리 만날 수 있고 심지어 실제로 가상에서 사귀거나 가상에서 '결혼'을 한 커플도 생기기도 했다. 이는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기술이 충분히 받쳐주지 못해 서비스는 급속도로 쇠퇴했다. 하지만 제페토가 2020년대에 메타버스라는 이름으로 부활한 세컨드라이프라고 볼 것인지, 다른 서비스 가치를 제공해줄 것인지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