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스타트업 경연장 된 '멜팅 팟' 한상... "의외의 조합에 기회 터졌다"
[한상대회 2023]
해외 첫 개최 21차 한상대회... 미 투자업계 - 정부 - VC - 스타트업 잇는 가교
'K글로벌500' 플랫폼 구축, 300개 이상 스타트업 데이터 확보... 확장성 기대
타이어센서 기술 선보인 '반프' 우승... 이커머스 반품 시스템 '리맥스' 주목
정부 차원의 규제가 한국 스타트업 성장에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가운데, K스타트업을 미국 등 해외 시장에 진출시키기 위한 '플랫폼'을 구축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 스타트업의 기술력 자체가 국내용이 아닌 미국 등 해외시장 진출을 통한 '스케일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미국의 각 지역에 있는 한인상공회의소가 힘을 모았다. 지난 11일~1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21차 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에서 산타클라라 한인상공회의소(회장 방호열)를 주축으로 미주 한인 상공회의소 총연합회 산하 지역 상의(워싱턴주, 시애틀, 댈러스, 라스베이거스, 애틀랜타, 오렌지카운티, 뉴욕, 노스캐롤라이나, 아칸소 등)는 한국의 스타트업이 미국 투자자들에게 기업을 소개하고, 투자 및 비즈니스 기회를 모색하는 프로그램을 개최해 주목받았다.
21차 한상대회는 최초로 해외인 미국 오렌지 카운티에서 열렸다. 지리적으로 미국 기업과 벤처캐피털 등 투자기관과 접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을 적극 활용했다.
단순히 기업과 기술을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실제 기업들의 정보가 담긴 플랫폼을 구축하는 한편, 지속적으로 플랫폼을 기반으로 투자 유치 등이 이뤄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취지가 반영됐다.
한국 재외동포청(청장 이기철)과 미주한인상공회의소 총연합회(조직위원장 황병구)가 공동으로 개최한 21차 세계한인비즈니스 대회에서는 '실용성'이 적극 반영됐다.
특히 13일(현지시간) 스타트업 피치(Startup Pitch)는 지속가능한 스타트업 해외 진출 플랫폼 구축이라는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
방호열 산타클라라 한인상의 회장에 따르면 올해 스타트업 피치 대회를 위해 'K글로벌500(kglobal500.com)'이라는 플랫폼을 구축했다.
이 플랫폼에는 스타트업 피치에 도전한 320개 K기업들의 프로필과 IR덱과 같은 정보들이 담겼다. 이를 위해 KIC 실리콘밸리(센터장 배정융), '도전과 나눔'(이사장 이금룡), 포비즈 코리아 등이 협업했다.
경연대회는 두 그룹으로 나눠 진행됐다. 그룹 1에는 박람회에 참가한 기업 중 40개 기업을 1, 2차 심사를 거쳐 8개 회사가 본선에 진출했다.
화상으로 진행된 그룹 2 본선은 320개 지원 기업 중 64개 회사를 1차 서류 심사를 거친 후 추가 심사를 통해 8개 기업을 추렸다. 두 그룹은 각각 10분씩 기업과 기술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경연에 참가했다.
대회는 미국에 진출을 희망하는 K스타트업이 실제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미국 VC 그룹을 대상으로 기업을 소개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한국인, 한국 기업만을 위한 반쪽짜리 행사에서, 실제 투자와 미국 진출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정부, 기업, 기관 관계자들이 대거 참가, 실용성과 효율성을 높인 행사로 한단계 업그레이드 됐기 때문이다.
대회 심사는 공경록 K2G 펀드 매니징 파트너, 정지훈 제너럴 파트너, 구본일 AFWP 파트너를 비롯한 한국계와 스타트업 캐피털 벤처스의 토마스 토이 파트너, 플러그 앤 그플레이 재니스 스크리베리스 파트너 등 투자업계 관계자, 그리고 메디컬 바이오 회사인 세븐 이노베이션 허브의 라즈 니할라니 창업자, UC버클리, 스탠퍼드대 교수진 등 테크 분야의 전문가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대회 수준을 높였다.
방호열 회장은 더밀크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진출을 위한 투자 가능성을 열어주는 투자업계를 직접 연결하고, 미국 내 기업, 지역 경제개발국, 협업 및 지원이 가능한 전문가 집단과 네트워크를 통해 접근성을 높일 수 있었다"라고 자평했다.
타이어센서 기술 선보인 '반프' 우승... 이커머스 반품 시스템 '리맥스' 주목
이날 피칭대회에는 다양한 분야의 혁신을 들고 나온 스타트업들이 업계의 주목을 끌었다.
오프라인 부문에 출전한 스타트업 '반프(BANF)'는 타이어 내부 감지장치에서 수집되는 정보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반프가 내놓은 타이어 안전 기술 시스템 'i센서'는 화물운송시장에서 자율주행차를 대상으로 한 센서를 통해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기술이다. 센서를 통해 타이어의 안전정보와 마모도 정도, 연비 절감 정보, 그리고 노면상태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 데이터를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유성한 대표는 "트럭의 사고 사례를 살펴보면 운전자 과실, 타이어 결함, 노면상태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며 "특히 타이어 결함은 전체 트럭 사고의 30% 이상을 차지한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자율주행 도입 시 운전 시간이 기존 8시간에서 24시간으로 늘어나고, 타이어 교체 주기가 1년에서 2.5개월로 빨라진다. 타이어결함에 따른 사고 비율도 기존 30%에서 70%까지 높아질 수 있다고 추정했다.
유 대표는 "우리 시스템을 도입하면 트럭 운송에 들어가는 연 비용의 7%, 1만 1500달러를 절감할 수 있다"며 "개스, 타이어, 유지보수, 보험 등 사고 예방을 통해 연간 12만 3500달러의 비용 절감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라고 추산했다.
효율적인 반품 시스템을 선보인 스타트업 '리맥스(REMEX)'도 눈길을 끌었다. 아마존의 서비스 프로바이더 네트워크(SPN) 공식 파트너사로 선정되기도 한 이 회사는 반품 와 악성재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혁신을 소개했다. 이른바 '역물류'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이다.
가령 아마존 이커머스 셀러가 운영비용 등의 문제로 리턴 아이템을 버려야 할 상황에 놓였다면 이를 수거해 검수하고, 재상품화해 재판매하는 토털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현재 이 회사는 미국 텍사스 댈러스 소재 스마트 창고 시스템을 활용,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리멕스 관계자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자사 혁신을 소개했다. 이 관계자는 "원 클릭으로 자동 오더 리턴과 리턴 관련 데이터를 제공한다"며 "셀러가 반품된 상품을 폐기했을 경우 292달러의 마이너스가 발생했다면, 우리 플랫폼을 이용해 1178달러의 수익을 낼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고객의 시간을 절약하는 것은 물론, 수익을 가져다주면서도 리맥스도 30%의 수수료를 챙기면서 윈윈 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 업체 측의 설명이다.
약사 출신 창업자가 설립한 메딜리티(Medility)의 '필아이'도 의료분야 혁신을 선보였다.
필아이는 알약을 카운팅 하는 앱으로 한 번 촬영으로 최대 1천 정의 알약을 99.9%의 정확도로 셀 수 있는 기술이 탑재됐다. 미국과 한국 약사들의 반복 업무를 획기적으로 줄여주면서 '라이프 세이버'라는 별칭이 붙기도 한 기술이다.
여기에 전기차 폭발을 예방하기 위해 배터리 문제점을 감지하는 센서를 개발한 템퍼스(Tempus), 홀로그램을 이용해 터치 없이도 번호를 눌러 문을 여는 등의 테크놀로지를 소개한 마케톤(Marketon) 등도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한편, 이날 오프라인 경연대회에서 반프는 우승을 차지하면서 1만 5000달러 상금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이어 리맥스는 5000달러 상금과 중소기업 중앙회 회장상을 받았다.
화상 피칭대회에서는 '심플플래닛(Simple Planet)'이 배양육을 생산하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우승을 차지했으며, '트이다(TEUIDA)'가 한국어 회화 교육을 제공하는 뛰어난 아이디어를 선보이면서 준우승을 수상했다.
VC투자포럼도 첫선... 투자 유치 가능한 네트워크 연결 '기대감'
스타트업만 소개된 것이 아니었다. 앞선 12일(현지시간)에는 벤처캐피털을 소개하는 '벤처캐피털 투자 포럼'도 열렸다.
포럼에서는 VC 관계자들이 자사의 투자 노하우와 관심 분야 등 펀드를 소개했고, 투자에 관심 있는 한국과 미국의 전문가들이 네트워크 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됐다.
총 250여 명이 참석한 포럼에서는 토니 정 AFWP 파트너스 대표, 김광록 프라이머사제 매니징 파트너, 카이버 나이트사의 리너스 리앙 매니징 파트너, 모멘트 벤처스 클린트 차오 파트너, 공경록 K2G 펀드 매니징 파트너 등 7개 VC 관계자들이 참석해 펀드레이징을 위한 고급 정보를 참석자들에게 소개했다.
이밖에 기업, 법조계, 기술업계 인사들이 인수합병, AI도입에 따른 디지털화 동향 등 다양한 주제의 기조연설과 패널토론이 이어졌다.
미국 상무부를 비롯해 유태인 상의, 뉴욕 상의, 미 서부지역 조달청, 텍사스 어빙-라스콜리나스 상의를 비롯한 정부 측 인사와 소프트뱅크 미국지사, 빌게이츠 회장이 만든 워싱턴 소재 로펌 K&L 게이츠 인사 등 정부, 민간 주도의 투자 기관 전문가들이 관심 있게 펀드와 투자 동향을 살피는 모습이었다.
참석자들은 각 세션이 끝날 때마다 행사장 뒤편에서 명함을 주고받으면서 인사를 나누거나, 펀딩 규모와 투자 방향 등을 묻는 등 실질적인 투자를 위한 정보를 주고받기도 했다.
방호열 회장은 "약 70건의 공식적인 1대 1 투자 미팅이 이뤄졌고, 천안시와 텍사스 어빙시 등을 비롯한 다양한 기관들 간의 향후 협력을 위한 MOU가 체결됐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실제 기술업계 일선에 있는 VC 투자자들을 통해 현재 동향과 향후 기술 추이를 소개해 투자 방향을 제시하고, 실질적인 네트워크를 제공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라고 평가했다.
더밀크의 시각: "시작이 반. K스타트업 무대는 계속 확장된다."
지자체 믿고 왔는데 지금 '멘붕'이에요.
한상대회가 한창이었던 지난 11일(현지시간). 애너하임 컨벤션 센터 전시장에서 만난 한 스타트업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이유는 전시장 분위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온 스타트업과 정부기관, 그리고 기업들이 지자체 산하로 카테고리가 나뉘어져 전시가 이뤄지다보니 모든 업종이 혼재해 난장판(?)이 됐다는 의미였다.
실제 스타트업 전시 부스 옆에서는 지역 특산물인 김과 음료수, 그리고 헤어 제품 등이 전시되고 있었다. B2C 고객들을 대상으로 브랜드 홍보에 열을 올리는 부스 옆에 있다보니 시너지가 나기 힘든 구조였다.
그간 미주 한인사회, 특히 상공회의소는 소위 '그들만의 리그'였다. 지역 스몰비즈니스가 주를 이뤘다. 이 때문에 미국에 진출하고자 하는 한국 기업들과의 연결고리를 맺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한상대회는 첫 행사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었다. 기업의 규모나 성격 구분 없이 다수의 스타트업이 참가했고, 스타트업 피칭과 VC투자포럼 등을 통해 실질적인 투자 가능성과 미국 진출 가능성을 높이는데 기여했다.
각 지역 상의의 협업도 돋보였으며 결과적으로 미국의 투자업계와 기업, 법률 회사, 회계법인 등 다양한 기관 전문가들을 무대로 이끌어내면서 '그들만의 리그'를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박람회에는 미주 한인기업, 한국 스타트업, 미국 정부 기관, 나스닥 상장 한인은행, 미국 소재 회계법인 등 다양한 기관들이 혼재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의외의 소득을 얻었다는 참가자들도 다수 나왔다.
뱅크오브호프, 한미은행 등 나스닥에 상장한 한인 자본 설립 은행들이 대표적인 예다. 미주 한인 은행들은 'K스타트업'이라는 새로운 시장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이민 1세 중심의 한인 사업가와 스몰비즈니스 업주들을 대상으로 한 영업 무대를 K스타트업과 미국 진출을 목표로 하는 한국 중견, 중소기업까지 확장하고 있었다. 한상대회는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은행과 금융 상품을 소개하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 자리였다.
미국 조지아주와 샌디에이고, 텍사스, 뉴욕 등에 거점을 둔 회계법인 LEK파트너스의 권용석 파트너도 "회계 영역 역시 다양한 변화하는 기업 니즈에 부응해야 한다. 미국 진출을 준비 중인 K스타트업을 위한 회계 서비스를 소개하려고 한상대회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권 파트너는 "와 보니 스타트업은 물론 VC와 투자업계 분들과도 다양한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었다. 인적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자리가 많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AI를 활용한 서비스형 뱅킹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는 한 스타트업 관계자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의외의 교류를 통해 새로 진입할 수 있을 것 같은 '니치마켓'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 전쟁으로 미국 시장으로의 전략적인 진출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점에서 해외, 그것도 미국에서 치러진 첫 한상대회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스타트업 행사를 주도적으로 이끈 이금룡 '도전과 나눔' 이사장은 "535개 기업과 650개 전시부스가 참여한 역대급 규모로 치러졌다"며 "5억 7000만달러의 계약과 1940만달러의 현장 계약이 체결됐다. 미국 시장의 규모와 중요성을 인식한 대회였다"고 평가했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번 한상대회는 '코리아 투 글로벌(Korea To Global)'을 위한 중요한 장으로 부각된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