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국인의 높아진 눈높이 '프렌드 컨슈밍'을 노려라
재닛 옐런 미 재무 장관, 방한시 LG화학 연구개발센터 방문
프렌드 쇼어링 정책 재천명하며 대중 무역 의존도 높은 한국 압박
미국 공장 짓고 시장 확대 기회 열려
더 절박한 쪽은 미국 .. 한미 통화 스왑, 이민 비자 확대 등 실질 이득 확보, 영향력 확대 해야
"파트너와 동맹국 간에 '프렌드쇼어링'(friend shoring)을 도입하고. 더 굳건한 경제 성장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 그는 최근 조 바이든 행정부의 재무장관 취임 후 처음으로 아시아 순방을 마쳤다. 옐런 장관의 아시아 방문 목적은 지난 15일부터 16일까지 양일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 참석하기 위한 것. 인도네시아에 가기 앞서 일본을 방문하고 G20 참석 이후엔 미국으로 귀국하기 전에 한국을 들러 한미 경제동맹에 대해 굳건히 하고자 했다.
옐런 장관의 이번 아시아 순방의 핵심 메시지는 ‘한국 방문’에서 나왔다. 그는 19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의 LG사이언스파크를 찾아 공개 발언을 통해 동맹국간 공급망을 구성하는 ‘프렌드 쇼어링’에 대해 공식 언급했다. 그는 한국 기업이 반도체와 배터리 분야에서 미국 투자가 늘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이런 경제 관계가 더 돈독해지면서 세계 경제가 탄력받고 더 건강해진다"고 말했다.
프렌드 쇼어링이란 무엇인가?
옐런 장관이 ‘프렌드 쇼어링’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 민주당 정부에 친숙한 LG그룹의 연구개발센터에서 윤석열 대통령도 만나기전에 ‘일부러’ 시간을 만들어서 메시지를 던진 것은 적잖은 의미가 있다.
프렌드 쇼어링의 핵심 지역인 한국, 핵심 제품인 ‘배터리’의 상징적인 공간(LG 서울 R&D센터)에서 자신의 핵심 정책중 하나를 천명한 것이다.세계 무역 관행의 방향 전환을 유도하면서 미국의 동맹 국가들이 반도체, 배터리, 5G 등 핵심 기술에 대해 중국 의존도를 낮추도록 하려는 것이다.
옐런 장관 등 바이든 행정부에서 대외 정책 과제로추진 중인 프렌드 쇼어링이란 같은 가치를 가진 국가나 회사가 해당 그룹 내에서 제조를 확산하고 공급망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정책을 말한다.
프렌드 쇼어링의 목표는 중국, 러시아 등 미국의 가치와 다른 나라들이 핵심 원자재, 기술 또는 제품에 대한 시장 우위를 부당하게 활용, 미국 경제나 동맹국의 경제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20세기 초부터 한 국가나 한 회사가 모든 것을 처리할 수 없고 글로벌 공급망 체계로 묶이면서 기업의 비핵심 영역을 외부(해외)에 맡기는 현상을 ‘오프 쇼어링(Off-shoring)’ 이라고 하고 이 것을 뒤집고 다시 모든 것을 내부에서 도맡아 하려는 움직임을 ‘리 쇼어링(Re-shoring)’ 이라고 한다. 지형적으로 근접한 국가에서 원자재 등을 공급받는 ‘니어 쇼어링(Near-shoring)’도 코로나 팬데믹 이후 본격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프렌드 쇼어링은 정치적 동맹국에서 생산한 원자재, 부품 등만을 소싱한다는 ‘동맹 쇼어링(Alliance-shoring)’과 비슷한 개념이다.
미국은 프렌드 쇼어링을 통해 희토류, 자석 및 군사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소재 부품 등 주요 제품에 대해 중국, 러시아로부터의 의존도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원재자, 에너지, 식품, 비료 공급 업체를 다각화하려 한다.
하지만 프렌드 쇼어링은 단기적인 공급 충격과 가격 인상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최근 미국과 중국의 무역이 단절되면서 가져오는 충격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미국인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인플레이션이 장기화 및 고착화 될 수 있다. 경제의 효율성이 저하되고 공급의 병목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부작용에도 미국의 이 같은 정책이 중국과 러시아의 권위주의 정권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미국이 정책을 단기간에 바꾸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왜 한국인가?
한국에서 ‘프렌드 쇼어링’을 재천명했다는 것은 여전히 중국과의 무역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한국을 사실상 ‘압박’ 하기 위한 움직임도 포함 돼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이 자리에서 옐런 장관은 “독재 정치를 하는 국가들은 경제에 큰 타격과 압력을 주고 있다. 중국은 특정 재료와 물질의 제조 환경에서 지배적 환경을 달성하기 위해 불합리한 시장 질서를 도입하고 있다”며 중국을 집중적으로 비난했다.
‘요소수’ 사태가 난 것처럼 중국산 수입에 의존하는 재료가 많고 반도체, 베터리 핵심 소재인 희토류를 중국이 쥐락펴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놓고 ‘탈중국’을 하라는 미국의 요구에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을 ‘압박’ 이라도 해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나타난 공급망 붕괴, 물가 상승, 기후변화 등의 인류적 과제에 반도체, 배터리가 핵심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세계 10대 경제대국이자 미국의 최동맹국 중 하나인 한국이 중국이 핵심 산업을 지배하는 것을 막는 가장 중요한 국가가 됐기 때문이다. 이번 옐런 장관의 LG화학 방문은 ‘전략적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누가 프렌드 쇼어링의 승자가 될까?
‘프렌드 쇼어링’ 정책은 미국에서 여야의 초당적 지지를 받고 있어서 정권이 바뀐다고 쉽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인들만 중국이나 러시아에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미국인들이 이들 국가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바이든 정부에서 오는 2024년 공화당으로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이 정책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즉, 프렌드 쇼어링은 중국 시진핑, 러시아 푸틴 정권이 바뀌지 않는 이상 장기적 과제로, 점진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프렌드 쇼어링의 혜택을 받는 국가로 대만,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인도 태평양 국가를 꼽고 있다. 당장 중국에서 공장이 빠져나왔을 때 후보지로 꼽을 수 있는 지역이다.
미국과 동맹국들이 신뢰할 수 있는 국가로 생산공장이 생기거나 투자가 이동하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글로벌 공급망의 지리적 집중을 다양화하면 전쟁, 기후변화, 정치적 변화, 넥스트 팬데믹 상황 등 외부 충격에서 탄력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한국의 대응은? 프렌드 컨슈밍을 노려라
사실 ‘프렌드 쇼어링’ 이 등장한 것 자체가 인류의 불행이다. 지난 30~40년간 세계화가 진전되며 이뤄놓은 글로벌 저물가, 고성장 시스템이 고장났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세계 각국의 시민이 받고 있다. 세계적으로 양극화가 극심하며 이로 인한 갈등이 커질 것이다.
중국의 강경한 코로나19 봉쇄는 고장난 글로벌 시스템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만약 과거와 같이 미국과 중국의 ‘훈훈한’ 관계가 이어졌다면 중국 지도자들은 미국산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을 충분히 확보해서 제공, 중국 국민들에게 일정 수준의 면역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중국은 경제를 재개하고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요한 역할을 되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계는 갈라졌고 중국은 자급자족 능력을 과시하고 외국(특히 미국산) 혁신을 거부하면서 1명만 확진자가 발생해도 그 지역 전체를 ‘봉쇄’하는 정책을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회’를 논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지만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고 누군가는 이익을 얻는 조직(국가, 기업)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받아들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프렌드 쇼어링의 핵심 국가로 부상한 한국은 이 같은 상황을 지렛대 삼아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내 투자를 늘림과 동시에 미국에서 ‘중국산’ 대체에 적극 나서야할 것으로 보인다. 국가 경제 정책적으로 ‘프렌드 쇼어링’은 미국 개인의 위치에서 보면 동맹국의 제품이나 서비스만 구매하는 ‘프렌드 컨슈밍(Friend-consuming)’의 개념으로 넘어오게 된다. 미국 내에서도 ‘반중’ 감정이 적지 않은 만큼 한국산 제품(서비스)임을 강조하고 이를 특히 기업간 거래(B2B)에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인들은 과거엔 품질이 낮아도 '가격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메이드 인 차이나'를 선호했으나 지금은 가격이 저렴해도 중국산 제품과 서비스를 꺼리는 상황으로 변했다.
실제 현대 기아차가 최근 미국에서 전기차 분야에서 의미있는 판매량을 기록하고있는 것이나 한화큐셀이 태양광 패널 분야에서 미국내 1위를 차지한 것은 적잖은 의미가 있다.
특히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11일 기사에서 현대기아차가 올 상반기에 20만대의 전기차를 판매했을 것으로 보고 테슬라(미국)나 폭스바겐(유럽)에는 뒤지지만 의미있는 판매량이며 이는 중국 전기차 업체들에게는 '길'을 보여주고 있는 것임과 동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정학'적 긴장이 중국 업체에게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이 같은 상황을 적극 인식하고 행동할 필요가 있다.
또 미국 정부의 1인자(대통령)와 경제 1인자(재무장관)이 잇따라 한국을 찾아 '구애'를 벌인 만큼 합당한 대가를 요구해야 한다. 기업의 세제 혜택에만 만족하지 말고 정치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한미 통화 스왑이나 이민 비자 확대 등 실질적인 교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요구하고 관철시켜야 한다.